“팔아도 부담, 사도 부담인 국민연금의 진퇴양난”

코스피지수가 8일 장중 7442.73까지 밀리며 8000선을 밑돌자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도 크게 흔들린 것으로 추산된다.
3월 말 국민연금이 발표한 국내주식 보유 평가액은 320조9000억 원이었고, 여기에 코스피지수 변화를 단순 대입하면 5일 종가 기준 국내주식 평가액은 약 518조3000억 원, 8일 장중 저가 기준으로는 약 472조7000억 원으로 내려앉는다.
하루 사이 추산 감소분만 45조6000억 원에 이르는 셈이다. 기금 규모를 1900조 원으로 놓고 보면 국내주식 비중도 27.3%에서 24.9%로 낮아진다.
다만 지난달 기금위원회 전까지 유지되던 기준인 19.9%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더 줄여야 하는지, 시장 충격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내주식 매도 계산이 환율 부담으로 번진 이유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을 19.9%로 되돌린다고 가정하면 약 94조6000억 원 규모의 국내주식 매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내주식을 팔고 해외자산을 사는 과정에서는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하는 거래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고, 원/달러 환율 1560원을 적용하면 약 606억 달러의 달러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고환율 국면에서 대규모 해외자산 매수가 진행되면 원화가치 하락 압력과 환율 상승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 있어, 단순한 자산 재배분 문제가 외환시장 리스크로 확장된다.
국민연금의 실제 금융시장 포지션과 국내주식 보유 허용범위 상단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수치는 가정에 기반한 추산이지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내 증시가 급락한 상황에서 연기금의 리밸런싱 방향이 매도 압력으로 해석될 경우 투자심리가 더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헤지와 외환스와프가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나

국민연금에는 환율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도 남아 있다. 지난 4월 기본 환헤지 비율이 기존 10%에서 15%로 올라갔고, 전술적 환헤지를 포함하면 최대 20%까지 활용할 수 있다.
이 여력은 해외투자 과정에서 현물환 시장의 달러 매수 압력을 일부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외환스와프도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차입하는 구조를 활용하면 당장 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들이는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환헤지와 외환스와프가 달러 수요 자체를 없애는 수단은 아니다. 만기에는 달러 상환 수요가 다시 발생할 수 있고,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가 이어질 경우 외환보유액에도 부담이 남는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4269억9000만 달러로 전월 말보다 8억8000만 달러 줄어든 것으로 제시된 만큼, 단기 완충과 중장기 부담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국민연금 리밸런싱, 방향보다 속도가 더 중요해졌다

이번 코스피 급락은 국민연금의 평가액 감소만 보여준 사건이 아니라, 국내주식 비중 관리와 외환시장 안정이 동시에 얽힌 문제를 드러냈다.
국내주식 평가액이 하루 기준 45조6000억 원 줄어든 것으로 추산되지만, 목표 비중과 비교하면 여전히 국내주식 비중이 높은 만큼 리밸런싱 필요성은 남아 있다.
반대로 고환율 환경에서 국내주식을 대거 팔고 해외자산을 늘리면 원/달러 환율에 추가 압력을 줄 수 있어 무리한 속도는 시장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핵심은 국민연금이 어떤 방향으로 자산을 재배분하느냐보다, 그 과정을 얼마나 시장 충격 없이 조절하느냐에 있다. 환헤지와 외환스와프는 단기 압력을 낮추는 보조 장치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국내주식 매도 규모와 해외자산 매수 속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코스피 8000선 하회 이후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은 기금 운용의 문제가 아니라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동시에 주목하는 변수로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