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동의 없어도 채권은 넘어갈 수 있다”

채권양도는 생각보다 낯선 방식으로 작동한다. 민법 제450조에 따라 원채권자가 채권양도 사실을 통지하면 성립할 수 있고, 채무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구조는 아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은행의 3개월 이상 연체 부실채권이 대손충당금 부담과 BIS 자기자본비율 악화 우려 때문에 시장가보다 50% 이상 낮은 가격에 매각되고, 자산관리회사나 대형 대부업체를 거쳐 회수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소규모 업자에게 다시 넘어가는 흐름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채권의 주인이 계속 바뀌는 동안 채무자는 누가 자신의 빚을 들고 있는지 뒤늦게 알게 되고, 장기 미회수 채권이 23년이 지나도 추심 대상으로 남는 이른바 좀비 채권 문제가 현실화된다.
채권 재매각이 불법추심 위험으로 번지는 구조

은행 입장에서는 오래된 연체채권을 계속 보유하는 것보다 매각을 택할 유인이 생긴다.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은 부실채권으로 분류될 수 있고, 이 경우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과 건전성 지표 관리 문제가 따라붙는다.
이후 채권은 자산관리회사와 대형 대부업체로 넘어가고, 회수에 실패하거나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더 작은 추심업자에게 재매각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채권이 시장가보다 50% 이상 할인돼 거래되는 구조가 생기고, 채무자 입장에서는 원래 빚보다 추심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지는 상황도 벌어진다.
특히 은행 대출과 카드 채무의 소멸시효가 5년이라는 점을 알고도 지급명령 신청이나 소송으로 시효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거나, 일부 변제를 유도해 채무 승인으로 처리한 뒤 전액을 청구하는 방식이 문제가 됐다.
58년 만의 판례 변경과 개인채무자 보호 장치

대법원 2023다240299 판결은 이 흐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언급된다. 기존에는 소멸시효가 지난 뒤 일부 금액을 갚으면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보는 판단이 강했다.
하지만 2025년 7월24일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는 채무자가 시효 완성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었는지, 또 포기 의사를 구체적으로 표시했는지를 따져야 하는 방향으로 법리가 바뀌었다.
58년 만의 변화라는 점에서 채무자 보호 기준이 한층 강해진 셈이다. 여기에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 즉 개인채무자보호법은 2024년 1월 제정돼 같은 해 10월17일부터 시행됐고, 채무조정 요청, 연체이자 제한, 채권양도 제한을 포함한다.
2025년 1월 개정된 대부업법도 7월부터 시행되며, 연이율 60%를 초과하거나 성착취·인신매매·폭행·협박 조건이 붙은 반사회적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반환 의무를 배제할 수 있는 방향을 담고 있다.
빚은 갚아야 하지만, 약탈까지 허용되진 않아

이번 변화의 핵심은 채무를 없던 일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빚 상환 원칙과 구조적 약탈을 구분하자는 데 무게가 실린다.
채권양도 자체는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반복 재매각과 장기 추심, 시효 완성 후 일부 변제 유도, 초고금리 불법 대부계약까지 한 덩어리로 묶일 경우 채권 회수라는 명분이 채무자 보호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광주지방법원 2024가합54343 판결에서는 2025년 5월29일 연이율 1738-4171%에 이르는 초고금리 불법 대부계약에 대해 원금과 이자 전액 반환 명령이 내려진 사례도 제시됐다.
채권양도 제도, 개인채무자보호법, 개정 대부업법, 대법원 판례 변화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만큼, 앞으로의 쟁점은 단순히 돈을 받아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회수가 허용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