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씩 몰리던 전자상가, GPU의 현장이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는 방문객 감소와 매장 폐점, 빈 상가와 철거 공사로 과거의 활기를 떠올리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1990년대 말만 해도 한국 IT 유통의 중심에 서 있던 공간이었다.
당시 용산전자상가는 아시아 최대 전자제품 메카이자 IT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렸고, 하루 유동 인구 10만 명, 연 매출 10조 원을 넘긴 거대한 상권이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곳이 창업 초기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한국 영업 서사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팔던 작은 회사였던 엔비디아는 PC 보급과 게임 산업 성장, 스타크래프트 열풍, PC방 확산을 타고 한국 시장에서 기회를 찾았고, 그 접점에 용산전자상가가 있었다.
지난 5일 젠슨 황이 서울 PC방을 찾아 지포스 RTX 5090을 선물한 장면이 다시 화제가 된 이유도, 30년 전 한국 PC방과 용산 유통망이 엔비디아 성장 이야기 속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용산, 하루 10만 명이 찾던 IT 성지

용산전자상가의 전성기는 PC 보급과 게임 산업 성장 흐름이 맞물리던 시기와 겹친다. 1990년대 말 용산은 단순히 전자제품을 파는 상권이 아니라, 컴퓨터 부품과 조립 PC, 게임 문화가 한꺼번에 모이던 거대한 유통 허브였다.
하루 10만 명이 오가고 연 매출이 10조 원을 넘었다는 수치는 당시 용산이 얼마나 강력한 소비와 공급의 중심지였는지를 보여준다. PC를 직접 맞추려는 소비자, 신제품을 찾는 IT 마니아, PC방 창업과 운영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려는 사업자들이 이곳으로 몰렸다.
특히 PC방용 PC의 조립과 공급에서 용산전자상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는 점은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 카드 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제품을 알리고 물량을 공급하려면 대형 유통망이 필요했고, 그 시대 한국에서 용산은 가장 직접적인 영업 무대였다.
젠슨 황이 찾던 시장, 스타크래프트와 PC방

1990년대 중반의 엔비디아는 지금처럼 AI 시대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이 아니라, 컴퓨터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중심으로 성장 기회를 찾던 회사였다. 젠슨 황이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당시 한국 시장이 GPU 수요가 커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인기가 폭발하며 PC방이 빠르게 늘었고, PC방에는 더 나은 게임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성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용산을 통한 조립 PC 공급망은 그래픽 카드 확산의 통로가 됐다.
젠슨 황이 한국에 올 때마다 용산 상인들과 교류하고 회식했다는 일화가 유퀴즈를 통해 알려진 것도, 단순 방문을 넘어 현장 밀착형 영업이 이뤄졌다는 이미지를 만든다. 엔비디아 성장의 모든 원인을 용산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한국 PC방 문화와 용산 유통망이 초기 GPU 시장 확대에 상징적인 배경이 된 것은 분명하다.
AI 시대 엔비디아와 쇠퇴한 용산의 대비

오늘날 엔비디아는 AI 시대 GPU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떠올랐고, 젠슨 황의 과거 한국 방문 일화는 온라인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PC방 방문과 지포스 RTX 5090 선물은 과거 게임용 그래픽 카드 영업에서 현재 AI GPU 기업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반면 용산전자상가는 더 이상 1990년대 말의 열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방문객은 줄었고, 문을 닫는 매장이 늘었으며, 빈 상가와 철거 공사가 과거 전자제품 메카의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한때 연 매출 10조 원을 넘겼던 상권이 지금은 쇠퇴의 상징처럼 보이는 상황은 한국 IT 유통 구조가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를 말해준다.
그래도 용산전자상가가 남긴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PC방과 조립 PC, 그래픽 카드 수요가 한데 모였던 그 공간은 젠슨 황과 엔비디아의 초기 성장 서사를 다시 꺼내게 만드는 한국 IT 산업사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