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조달 정상화 기대가 커졌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개전 106일 만에 사실상 종료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시선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 쏠리고 있다.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를 통해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완료를 발표했고, 19일에는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식이 예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며 원유 물류 경로가 흔들렸고, 국내 중동산 원유의 70%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정유업계는 지난 3개월여 동안 큰 비용 압박을 받아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석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오가는 핵심 요충지인 만큼, 통행료 없는 전면 개방과 해상 봉쇄 해제가 현실화되면 원유 수급난 완화와 물류 정상화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유 4사 1분기 5조9635억 원

전쟁 초기 유가가 급등하면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5조9635억 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숫자는 기존 재고 가치가 올라가며 생긴 재고 관련 이익이 반영된 장부상 호실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 현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희망봉 우회 등 물류 부담이 커졌고, 초대형유조선 VLCC 운임 폭등과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가 수익성을 압박했다. 여기에 국내 석유제품 판매가격을 제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맞물리면서 정유업계의 누적 영업손실은 4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쟁 종료로 유가가 내려가면 1분기 장부상 이익을 일부 반납하는 재고 평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는 종전이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다.
석유화학은 나프타 부담, 에틸렌 스프레드가 더 문제

석유화학 업계도 전쟁 종료를 반기는 분위기지만, 단기 부담은 남아 있다. 전쟁 중 유가가 뛰면서 나프타 가격이 함께 올랐고, 석화 업체들은 비싸게 들여온 원재료를 뒤늦게 투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3월 한 달간 래깅 효과로 일부 깜짝 실적이 나타날 수는 있었지만, 이후 고가 나프타 투입이 이어지면 역풍이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석화업계는 경기 침체와 중국·중동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이미 다운사이클을 겪고 있으며, 에틸렌 스프레드는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톤당 250달러선에 크게 못 미치는 톤당 100달러 미만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원유와 나프타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제품 가격과 수요가 함께 회복되지 않으면 수익성 개선 속도는 제한될 수 있다.
단기 손실 뒤 중장기 원가 안정이 관건

전쟁 종료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국내 에너지 업계에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원유 물류망이 정상화되면 희망봉 우회와 운임 급등 부담이 완화되고, 하반기에는 정유업계가 정상 정제마진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석유화학 업계 역시 나프타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면 원재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유가 하락 과정에서는 고가 원유와 나프타 재고가 평가 손실로 돌아올 수 있고, 부정적 래깅 효과가 다음 분기 실적에 부담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전쟁을 거치며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과거 70%대에서 올해 5-7월 도입 물량 기준 48.5%로 낮아졌고, 북미산 등 대체 원유 도입이 확대됐다는 점은 수입선 다변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정유·석화 업계의 회복은 종전 발표 자체보다 호르무즈 정상화, 원가 하향 안정, 재고손실 흡수, 수입선 다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맞물리는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