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이 넘어야 했던 건 브랜드 이미지였다”

기아 K9을 단순히 상품성이 부족했던 차로만 보기는 어렵다. 외관과 실내는 플래그십 세단에 맞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노렸고, 주행 능력에서도 준수한 평가를 받으면서 자동차 자체의 완성도에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다.
문제는 고급 세단 시장에서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는 대상이 성능과 사양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차량에 붙은 브랜드와 엠블럼이 어떤 이미지를 주는지까지 구매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에서 K9은 당시 기아가 갖고 있던 대중차 이미지와 정면으로 부딪혀야 했다.
플래그십에 필요한 조건은 갖췄지만

K9은 외관부터 기존 기아 모델과 다른 고급 세단의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 실내 역시 플래그십에 맞는 차별화를 시도했고, 주행 능력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상품성에는 괜찮다는 반응이 있었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고급 세단에 기대하는 기본 조건을 상당 부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같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어떤 브랜드의 차를 선택하느냐가 만족감에 크게 작용하는 시장에서는 상품성만으로 구매를 끌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K9의 아쉬움도 이 지점에서 커졌다. 차 자체와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브랜드 가치 사이에 간격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기아라는 이름이 고급차에서 다른 의미가 됐다

K9이 등장하던 당시에는 기아를 고급차 브랜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일부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대중차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고, 플래그십 세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런 인식이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고급 세단은 이동수단을 넘어 차를 타는 사람의 이미지까지 함께 소비되는 성격이 강하다. 디자인이나 승차감이 만족스럽더라도 엠블럼이 주는 인상이 기대와 맞지 않으면 마지막 구매 단계에서 다른 차로 시선이 옮겨갈 수 있다.
K9은 자동차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과 소비자가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K5를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도

당시 K5를 둘러싼 온라인 이미지도 K9에는 유리한 환경이 아니었다. 과격한 튜닝 차량이나 난폭 운전 사례가 자주 언급되면서 K5가 이른바 ‘양카’ 이미지와 연결되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평가는 모든 K5 운전자나 기아 차량에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같은 기아 로고를 사용하는 K9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익숙한 브랜드 이미지를 벗어나 정반대에 가까운 럭셔리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는 부담이 있었다.
플래그십 세단 구매자가 브랜드의 품격이나 사회적인 이미지를 함께 고려한다면 이런 간극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K9의 상품성만 놓고 판단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로고 하나도 플래그십에서는 구매 요소가 됐다

K9의 기존 기아 로고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있었다. 크고 고급스러운 차체와 실내를 만들어 놓았지만, 전면과 후면의 익숙한 기아 엠블럼이 차량이 추구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대중차에서는 작은 디자인 요소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고급차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차량 자체뿐 아니라 브랜드가 주는 만족감까지 기대하기 때문이다.
K9은 디자인과 주행 성능만 좋아진다고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까지 같은 속도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플래그십 시장에서는 오랜 시간 축적된 이미지가 실제 구매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미금융의 정리
K9의 아쉬움을 단순히 ‘차가 부족했다’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외관과 실내, 주행 능력에서는 플래그십 세단에 필요한 상품성을 갖추려 했지만 당시 기아가 가진 대중차 이미지와 일부 부정적인 인식까지 동시에 넘어야 했죠.
고급차를 볼 때는 성능과 옵션뿐 아니라 소비자가 브랜드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K9 사례는 자동차의 상품성을 높이는 일과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시간 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